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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민화를 그리고 싶어서 재료를 바리바리 챙겼다

신랑 따라 해외에 약 두 달씩 한국과 해외를 번갈아 가며 왔다갔다 할 때가 있었다. 두 달의 생활과 시간이 너무 아깝고 무료해서 민화재료를 처음으로 바리바리 챙겨 싸들고 나갔던 때였다. 짧은 일정으로 가볍게 가는 여행이라면 굳이 그림 재료까지 가져가진 않았을 텐데,,, 두 달이나 있으면서 그림을 안 그리고 쉬자니 손이 근질근질 했다. 그래서 화실 선생님께 부탁해 아교포수 된 장지도 부탁하고, 짐을 최소화 시키기위해 파레트에 물감도 열심히 짜서 말리며 해외로 들고 갈 준비를 시작했었다.

튜브 물감을 색깔별로 빵빵하게 들고 가기는 싫으니 출국하기 전에 48색 파레트에 물감을 하나하나 가득 짜 넣었다. 말리는 것도 시간이 꽤 걸렸다. 두 달이나 있을 거니까 그림도 그리고싶은건 내 마음이지만, 4인가족 짐을 챙겨야 하는데 그림 재료가 캐리어에서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건 또 사치다. 차라리 먹을 걸 하나라도 더 넣어야지. 한인마트도 없는 곳인데... 그래서 정말 파레트 하나랑 호분 튜브 하나만 챙겼다.  붓은 붓발에 돌돌 말아서 넣고, 장지는 구겨지면 안 되니까 다이소에서 5천 원 주고 산 화구통에 전지 사이즈 장지를 여러 장 말아서 등에 메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봐도 나 그림 그리는 사람이예요~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실제로 공항에 도착해서도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공항에서 민화 물감 때문에 짐 검사를 받았다

해외를 수시로 들락달락 하기에 짐검사에서 걸릴만한 품목은 처음부터 넣지 않는데,, 문제가 생겼다. 국내선 연결 항공편에서부터 방송을 하더라.. 나 오라고.. 응?? 나?? 애들도 있고,, 가방도 짐도 많아서.. 뭐지? 나 부르는거 맞나? 잘못 부른거 아닌가 싶었다. 

가방 검사하는 곳으로 갔더니,, 가방을 열어도 되냔다.. 그래서 열어도 된다고 했더니.. 파레트가 문제라고 한다. 응? 파레트가요? 도대체 왜요?? 물음표 가득하게 물으니.. 유화물감은 인화물질로 분류되어 통과가 안된다 어쩐다.... 그랬다. 

그러면서 "이게 어떤 물감이죠?" 라고 물었다. 순간 당황해서 이거 그냥 한국화 물감인데요... 수성일걸요?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급하게 어떤 물감인지 검색해서 보여주다가 딱 하나 들고온 튜브물감이 생각나서 보여줬다.. 이거! 이거예요!! 라고...

 

아마도 한국화 물감이라는걸 확인하고, 적어도 유화물감처럼 위험한 물감은 아니라고 판단 했던것 같다. 그래서 직원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국내선이라 일단은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끝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해외 연결편이 바쁘니 일단 국내선에서는 보내드리겠습니다.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서 다시 걸리면 파레트는 버리고 가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그 말을 듣는데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와..놔... 열심히 짜서 들고 바리바리 챙겨왔는데.. 이거 버리고 가야되는거야.ㅠ.? 물감 없으면 화구통도 이고지고 갈 필요가 없는데?!!

 

일단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 카운터 앞에 섰다. 정 안되면 다 버리고 가야지 뭐.. 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계속 마음이 불안했다. 혹시 또 잡히면 어떡하지. 혹시 이번에는 정말 버리라고 하면 어떡하지. 진짜 버리고 가야하나...짐을 맡기고 가방이 검색대에 통과 할때까지 CCTV를 보고 섰다.. 과연 잡힐 것인가 말것인가..  10분 남짓인데,,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내가 이용했던 해외 국적기는 상대적으로 검사가 덜 까다로웠는지 별다른 문제 없이 통과했다. 그때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 뒤로 해외에 나갈 때는 튜브 물감을 챙긴다

그 일을 겪고 나서는 해외에 나갈 일이 생기면 귀찮아도 그냥 튜브 물감을 챙긴다. 예전처럼 파레트에 물감을 미리 가득 짜서 말려 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게 짐도 줄이고 더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공항에서 한 번 붙잡히고 식은땀을 흘려 보니까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게가 조금 있어도 튜브 물감 들고가야지....

이 일이 있은 후로는 누가 그림재료 들고 비행기 탄다고 하면 절대 파레트에 짜서 들고 가지 말라고 얘기 해준다. 나 이런일이 있었담서.. 

 

지금도 해외에 민화 재료를 챙길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그날 공항에서 들었던 말이다.

"이게 어떤 물감이죠? MSDS 있어요?" 엥? 네? 그림 그리는데 파레트가 문제된다는 사실을 처음 안 날이기도 하고.. 민화를 오래 그리다 보면 이런 일도 한 번쯤은 겪게 되는구나 싶기도 하다. 그때는 정말 당황해서 뭘 검색해서 보여줘야 하는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발 동동 구르며 해결하려 했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