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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내가 무슨 그림이야 싶었는데”
정말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지난 날, 처음엔 내가 무슨 그림이야 싶었는데..

 

태교 민화, 처음엔 내가 무슨 그림이야 싶었다

10년 전 임신하고 다니던 병원에서 문화센터 강좌가 열려있었다, 그 즈음 민화가 막 시작된 시기였던것 같기도 한데,, 

처음엔 시큰둥하니,, 내가 무슨 그림이야~ 난 절대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라며 다른 태교활동을 막 찾아 다니고 했었다. 

꽃꽂이도 하고, 요리도 배우고, 자수도 배우고,, 결혼하고 임신하기 전까진 계속 직장생활을 이어왔던 나에게 태교를 명목으로한 휴식 같은 달콤한 시간이였으니까,, 그 시간을 쉬이 낭비하며 쓸 수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간호사의 적극적인 영업으로 나를 민화의 세계로 꼬시기 시작했다. 이거 보라며 나같은 똥손도 그릴 수 있는게 이 민화라며 너무 재밌다고 그러기에,, 혹 해서는 태교민화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예쁜거 많이 보면 좋다니까~ 좋은게 좋은거지 뭐.. 라며.. 못이기는척 영업에 넘어갔고..그림에 소질 없던.. 그림과 거리가 먼~~ 나는 그렇게 민화를 시작 하게 되었다.  

민화 첫 작품, 쌍 모란도

그렇게 꼬임에 넘어간 나는,, 태교민화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본뜨고 밑색 칠하고, 바림하고 테두리선도 뜨고,, 모든걸 내손으로 처음 해 본 그 그림은 쌍모란도였다.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도라기에 눈이 초롱초롱해져서는 나도 모르게 열심히 그렸던 기억이 있다. 태교민화반 친구들은 총 6명이였는데,, 모두 같은 그림 같은 도안, 같은 색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6개의 그림은 모두 다른 그림이 되어있었고, 제각각의 개성을 가득 담은 모란도가 되어있었다. 누가 봐도 내 그림은 딸을 품은 사람이 그린 여리여리한 느낌의 모란도였고, 그 모란도는 예쁘게 액자로 만들어서 딸이 독립할 때 주려고 고이 모셔놨다. 

민화는 틀릴 수가 없는 그림이야

태교 민화반에서 모두가 처음이였기에 선생님을 참 많이 불렀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소리를 많이 질렀던것 같다. 으악!! 선생님 망했어요~ 으악!!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으악!! 선생님,, 선이 너무 두껍게 그려졌어요!! 등등. 지금 생각해봐도 절레절레 웃음이 나는데,,  그때 선생님은.. 내가 으악!! 하며 부를때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로 대답했다. 근데,, 이게 나만 그런게 아니라 6명의 친구들이 모두 으악!! 을 외쳐댔었는데도..정말 선생님 말대로 모든것이 괜찮았고,, 수정이 되었던걸 보면 민화는 틀릴 수가 없는 그림인것 같다. 간호사 쌤이 똥손도 모두가 다 그릴 수 있는게 민화라는 사실에 수긍이 갔다.  

붓질 한번에 좋은생각, 민화가 힐링인 이유

틀릴 수가 없는, 모두가 그릴 수 있는 민화를 내가 아직도 그리고 있는 이유는..

 뭐랄까 붓질 한번에 담았던 좋은 생각, 그리고 또 한번에 좋은 바람을 담아 그리며 힐링을 했었기에 아직도 그 붓을 못 놓고 계속 그리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좋은 일 가득하게 해주세요~ 같은 희망과 바람을 가득담아 그리다 보면 오롯이 그림에 빠져 잡다한 생각들이 멀어지니까.. 그렇게 그 좋은 그림 그리러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10년 동안 나는 소품부터 50호가 넘는 작품들까지 그리는 준 작가가 되어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민화는 오래 묵힐수록 더 무르익어가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지금을 바라보기 보단 좋은 마음과 좋은 생각을 그리며 앞으로 나가갈 수 있는 그림이기에,,

그렇게 민화를 계속 그리다 보니,, 단체전도 나가보고, 소품도 그려보고, 새해가 되면 신수나 삼재부도 그리고, 공모전에도 작품을 내보고, 단체전도 하고, 시리즈 작품 그린다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적도 있다. 그림 하나 완성하고 나면 또 다음 주제가, 또 다음 그림이 기다려지고 잘 안 풀리면 몇 날 며칠 그림을 안보다가 또 해야지 싶어,, 돌아오는.. 그렇게 하나씩 쌓이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엔 그림이 가득했고, 나도 모르게 민화가 내 일상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처음엔 '내가 무슨 그림이야' 하던 사람이였는데,, 지금은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직은 지금 당장 나 민화로 밥 벌어 먹고 살꺼야!!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데,, 살다보면 그리고 계속 그림을 그리다보면 좋은 인연 좋은 자리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혹은 민화 작가로서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 본다.